1588년에 영국의 신대륙 이주가 시작되었다. 영국 함대가 스페인의 함대를 무찌르고 해상 강국으로 등극하면서 이주의 길이 열렸다.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면 가장 먼저 닿는 땅이 북아메리카의 동쪽 해안이었기에 영국은 스페인으로부터 북아메리카 동해안을 요구하여 차지하였다. 그리고 북아메리카 동해안에 13개의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영국에서 이주한 이주민들은 영국과 다른 기후조건을 견디며 황무지를 개척하여 농지를 만들어야 했다.
그때 당시 유럽은 전쟁으로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암담했다. 독일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30년 동안의 전쟁으로 인해 약 400만 명이 굶주림과 페스트로 목숨을 잃었고 전체 인구의 5분의 1이 사망하였다. 또한 신분제가 강했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농민은 평생 영주의 노예로 살면서 교회와 군주에게 엄청난 세금을 내야 했고 본인의 땅을 소유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러한 유럽인들에게 남은 희망은 신대륙뿐이었다. 그때 당시 미국은 온갖 희망의 소문으로 가득 찬 나라였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는 아메리칸드림은 이러한 역사적 이유로 생겨난 용어이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간 미국이지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험난한 길이였지만 참담한 유럽의 상황에 그나마 미국이 희망이었다.
정착의 시도가 항상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최초의 영국인들 마을 로어노크는 1586년에는 북아메리카 동해안의 한 섬에 만들어졌는데 그곳은 900명의 남성과 17명의 여성 9명의 어린이가 들어가 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곳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로어노크 사건 이후 무역회사 버지니아 기업이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로부터 허가받아 북아메리카에 2개의 정착촌 ‘제임스타운’을 건설하였다. 먼저 버지니아 기업에서 발행한 주식을 팔아 주식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이후 나오는 이윤의 지분 청구권을 주는 조건으로 건설 비용을 충당하였다. 1607년 100명의 영국인이 버지니아 지역으로 들어가 정착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존 스미스(John Smith)라는 사람이 엄격한 규율로 제임스타운을 지휘한다. 존 스미스는 강직함 덕분에 버지니아 마을은 로어노크와 같은 불상사는 따르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이주민이 계속 들어오면서 약 500명으로 늘었고 존 스미스의 말이 먹히지 않게 되었다. 존 스미스는 권한이 약해지자 영국으로 돌아가 버리고 그해 겨울에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면서 약 500명에서 60명만 살아남게 되었다.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영국의 지원과, 포우하탄족의 도움으로 그나마 살아남게 된 사람들은 앞으로의 생계가 걱정이었다. 그러다가 발견한 것이 담뱃잎이었다. 제임스타운 사람들은 버지니아의 기후와 땅에 담뱃잎 재배가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당시에 담뱃잎은 유럽에서 인기가 많았고 원주민들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에 담배 재배 사업은 경제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